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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다음 발췌 부분 중 빨간 글씨. ---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는 라틴어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혀 왔다. 카이사르의 연설을 지극히 높이 평가했던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전쟁기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실로 감탄할 만하다……. 의복과 장신구를 모조리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채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그는 역사를 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위 그들의 ‘재능’을 더해 군더더기를 붙이고 싶어한 바보들만 기쁘게 했을 뿐이고 오히려 분별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역사를 쓰려는 의욕마저 빼앗아가버렸다. 역사 서술에 있어서 이 이상 명료하고 간결할 수는 없다.(5) 이는 기원전 46년에 쓰인 글이다. 당시 키케로는 점차 카이사르의 독재 권력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가 말한 ‘분별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카이사르의 업적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을 암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그의 찬사는 진심 어린 것이었다. 어쩌면 키케로 자신의 문장과 완벽한 대조를 이루는 그 철저한 단순성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카이사르는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 말은 키잡이가 암초를 피하듯이 피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외국어 등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는 이 원칙을 굳게 지키며 명료하고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그의 글에는 감정적 또는 신파조의 내용이 거의 없다. 극적인 사건과 중요한 사건의 경우에 그는 그 사건이 스스로 이야기하게 했다. 자신을 제삼자로, 자신의 병사들을 ‘우리 사람들(nostril)’로 칭하면서 그는 ‘적법한’ 지휘관의 지휘 아래 흉포한 적군, 때로는 자연을 상대로 싸우는 로마 시민들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아울러 그는 매번 자신의 행동이 전적으로 공화국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현대의 독자들은 그의 전쟁기에 표현된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행태, 대량 살육과 대량 처형, 노예화 등으로 인해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동시대의 로마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열광했다. 카이사르의 정적들조차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 흥분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했다.(6) 많은 정치 지도자들과 군 지휘관들이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곤 하지만 문학적인 측면에서 카이사르의 전쟁기에 필적할 만한 것은 아직 없다. 굳이 꼽는다면 비교적 최근 것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처칠이 쓴 자신의 이야기, 뛰어난 문장력과 속도감을 지닌 그 이야기가 가장 근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뱀발. 사실 난 키케로에 대해선 잘 모른다. 직접 읽은 것은 대비 열전(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키케로 전기 정도.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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